1. 책 소개
이 책은 영국의 저명한 시사 주간지인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 기사 원문과 함께 번역 및 해설이 담긴 책이다. 이코노미스트는 19세기부터 발행되고 있는 긴 역사를 자랑하며, 주로 자유주의적 정치관 및 시장경제적 경제관에 입각한 기사를 싣는다.
이코노미스트의 한 가지 특징은 수준 높은 문어체 영국 영어를 구사한다는 점인데, 특히 기사를 작성한 기자의 이름을 밝히지 않으며 모든 기사를 마치 한 사람이 쓴 것처럼 일관된 어조로 편집하는 것이 다른 언론 매체와 뚜렷하게 구별되는 점이다.
즉, 수준 높은 영어를 잡지 전체에 걸쳐 구사하고 있어서 영어 공부용 교재로 국내에서 널리 쓰이고 있으며, 특히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과 같이 통대를 진학하고자 하는 입시생 혹은 이미 재학 중인 학생들이 자주 보는 잡지로도 유명하다.
다만 이코노미스트는 원어민들한테도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수준의 영어를 구사하기 때문에 초급자에게는 적절하지 않고, 최소한 A4 용지 1쪽 정도의 영어 원문을 무리없이 읽어나갈 수 있는 중급자 이상이 보는 것이 좋다.
이 책은 이러한 이코노미스트에서 기사 20건을 발췌하여 전체 원문을 싣고, 번역가이자 저술가로 활동하는 정병선 씨가 원문에 대한 번역 및 영어 해설을 하고 있다.
2. 대상 독자
상기한 것처럼 이코노미스트의 기사 자체가 영어 초급자에게는 쉽지 않기 때문에, 이 책도 영어를 알파벳부터 시작해 최소한 2~3년 이상은 공부한 사람이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더 구체적으로 말해, 고등학교 영어 수준까지 학습한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3. 책의 구성과 특징
책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이코노미스트 기사 원문과 함께 나란히 한국어 번역문이 나온다(다른 부분과 구별되도록 노란색 페이지에 실려 있다). 둘째, 해당 기사의 주요 내용에 대해 정병선 씨가 문법 및 어구 등을 해설한다. 셋째, 해당 기사에서 쓰인 주요 단어들의 뜻이 정리되어 있다. 이렇게 세 가지 내용을 한 세트로 하여 총 20건의 이코노미스트 기사를 읽는 것이다.
책의 장점으로는 무엇보다도 교양있는 원어민의 영어를 집중적으로 학습할 수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요즘은 사회 전체적으로 짧고 빠른 콘텐츠에 대한 선호의 증가를 반영하듯이, 어학 출판계에서도 짤막한 내용 위주의 학습서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 이 책은 이러한 트렌드와 타협하지 않고 철저하고 우직하게 잡지 원문을 읽어 나간다. 따라서 이 책 한 권을 충실히 학습하면 시중의 수많은 영어 학습서 대여섯 권을 공부한 것과 맞먹는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영어권 출판물 원문을 직접 읽고 해설하는 식의 학습서는 2000년대 중후반까지 많이 출판되었는데, 대표적인 예로는 2003년에 넥서스 출판사에서 나왔던 'The World Best Columns' 를 들 수 있다. 지금은 절판되었다.)
다만, 이 책의 번역 및 해설은 영어 학습서라는 실용서의 목적에 비해 다소 어렵게 전개되는 점이 있다. 책 날개에 실린 편역자 소개를 보면 사회물리학, 진화생물학 등에 관심이 있으신 것으로 보이는데, 그래서인지 해설에 다소 현학적인 느낌이 드는 부분들이 있다.
한 가지 예를 보자.
"현대 물리학의 성과에 의하면, 시간이 흐르지 않고 개별적으로 점재한다고도 하는데, 이 말이 맞을 수도 있습니다...(중략)...인간은 목적 의식적 존재이고, 미래를 내다 봅니다. 그 미래가 동기가 되어, 현재를 견인합니다....(중략)...반면 원인은, '행위 주체성', 나아가 '생물학적 욕동', '생존과 번식'이 개입하지 않습니다...(후략) (p.387)
책에 어떤 내용을 쓰든 그것은 저자 내지는 편역자의 자유이므로 독자인 내가 간섭할 권한은 없으나, 과연 영어 학습서에 이 정도의 해설이 필요한지는 의문이다. 물론 편역자께서 각종 과학적, 철학적 개념을 동원하여 영어라는 언어의 작동 원리 및 원어민들의 사고 방식을 해설하려는 '큰 그림'으로 이해할 수 있겠으나, 다소 과도한 느낌이 든다. 이런 부분들을 덜어 내고 영어 자체에 대한 해설을 좀 더 충실히 했으면 학습자에게 더 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한다.
그 밖에 편역자의 해설문에서 전체적으로 쉼표(comma)가 많이 사용되고 있고 문장을 시작할 때 부사 '기실' 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하는 점이 눈에 띄었는데, 이는 1990년대까지 널리 쓰이던 한국어 문어체이다. 요즘은 이런 식의 문장을 자주 쓰는 편이 아니어서 이채로웠다.
편역자의 이러한 문어체는 기사 번역문에도 등장한다.
예를 들어, 17쪽의 아마존 관련 기사 번역문 일부는 다음과 같다.
"작금은 팬데믹이 한창이고, 디지털 수요가 폭증했으며, 우리는 아마존이 미국과 유럽에서 대다수의 삶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목도하고 있다. (원문 : Now the pandemic has fuelled a digital surge that shows how important Amazon is to ordinary life in America and Europe...(하략))"
나라면 '작금'이나 '목도' 등의 단어를 쓰지 않고 이렇게 번역했을 것이다.
"팬데믹으로 디지털 기술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면서 미국과 유럽인들은 아마존이 일상 생활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실감하게 되었다."
원래 번역에는 정답이 없으므로, 이것은 내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다. 일부 외국어 학습서에서는 원문과 번역문 간의 차이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직역투의 문장으로 번역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책의 편역자도 그렇게 의도했을 수 있다. 다만 그 경우에는 서문 등에서 뜻을 밝히는 것이 좋았을 것이다.
4. 결론 : 학습을 추천함
학습서 한 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하게 공부하여 책을 떼는 것을 좋아하는 분들에게 추천한다. 기사 20건이 실려 있으므로 반드시 순서대로 읽지 않더라도, 내키는 대로 책을 손에 들고 그때 그때 짚이는 부분을 공부할 수도 있게 구성되어 있다.
사족을 덧붙이자면, 기사를 학습하고 난 뒤에는 편역자의 번역에 만족하지 말고 본인이 직접 가장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한국어로 다시 번역해 볼 것을 추천한다. 서울 강남역 등지에 있는 통번역대학원 입시 학원에서도 이코노미스트 기사를 그런 식으로 가르친다. 스스로 영어 원문을 한국어로 최대한 자연스럽게 번역해 보는 과정을 통해 영어와 한국어의 차이가 머리 속에 자리 잡으면서 영어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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